Home > 나눔공간



No.공지 Viewing 
  스포츠한국에 실린 원장님 기사
글 쓴 이 :  자성의 집 등록일 :  2009-10-27 14:02:51 |  조회수 : 2803


■나를 찾아 떠난 여행

내가 왜 이렇게 사나? 나만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

한번쯤 이런 생각 해보지 않은 분은 아마 없으리라. 이런 생각이 들면 대개의 사람들은 “이러다 말겠지”하며 그냥 체념을 하기 마련이다. 술이나 섹스, 운동, 종교활동 등 기타 마음을 쏟아 부을 곳을 찾아 부나비 처럼 날아 다니지만 돌아오는 것은 주기적인 마음의 공황상태 일뿐... 모두 그때의 방편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그 어느것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필자 또한 사람인지라 이런 생각이 안 찾아들리 만무하다. 어린 시절부터 또래의 아이들과는 틀리게 세상의 다른 이면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지라 인간으로서의 공허함과 고통은 더 자주 줄기차게 찾아 들었다. 중학교 때는 도사를 찾아 제자가 되겠다고 집을 나가 헤메기도 했으며, 재수시절에는 직접 경전을 만들어 종교를 창시해 보려는 해프닝도 벌였었다. 

대학을 들어갔으나 자퇴를 하고 절에서 생활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별볼일 없는 듯 하여 다시 재입학 후 남들처럼 직장도 가지고 연애도 하고 평범하게 살아봤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풀리지 않는 갈증이 도사리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체 내가 누구란 말이냐?”

그런 갈증의 인연이었을까? 
필자는 <한국의 초인(超人)들>이라는 시리즈를 책으로 묶기 위해 소위 도사나 초능력자 또는 대가(大家)라고 불리우는 분들을 찾아 인터뷰를 해오고 있던 중 개인적으로 스승님으로 모시는 약산(藥山) 여사에게서 <자성의 집> 김상욱 원장을 소개받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 모든 과정이 우연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 역시 인연이리라.

약산 여사는 경기도 안산에서 무료 찻집을 운영하시며 삶에 지친 이들에게 좋은 말씀과 휴식처를 제공하시는 분인데, 어느날 그분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대 도인이 있으니 만나보지 않겠냐”는 전갈을 받은 후 기대반 호기심반으로 따라 나서게 된 것이다. 

처음엔 서로들 바쁘고 해서 당일치기로 갔다 올 심산이었지만, 그곳의 원장이신 김상욱 선생을 대면하고는 뭐에 홀렸는지 하루를 더 머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는데, 처음 대면한 인상은 영락없는 호랑이 상이었다. 




(사진: 김상욱 선생이 얘기하는 모습)

필자가 재주는 없어도 사람을 처음 대면하면 그 사람의 기를 느낄 수는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쪽으로 예민해서인지 맑고 탁한 정도는 안다. 그래서 때때로 김상욱 선생 같은 이런 호랑이상을 만나면 움츠러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김상욱 선생이 체구가 엄청나게 크다거나 자객처럼 눈빛에서 살기가 나오는건 절대 아니다. 이분은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으셨기 때문에 오히려 체수도 일반인보다 적게 나가시고 눈빛도 항상 웃음을 머금고 있다. 보통 사람이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 분을 봐서는 몸이 좀 불편하신 동네 아저씨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양반이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이런 동네 아저씨 같은 분이 세상과 인간사의 모든 이치를 깨달은 대 도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김상욱 선생은 대구의 산속에서 은거하시며 가끔씩 찾아오는 이들에게 치유와 명상법, 깨달음을 전하고 있는데, 스스럼없이 놀러 오는 손님들 중에는 진담반 농담반으로 “도사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김선생은 “그렇게 부르지 말라”며 아주 부끄러워 하시는데 그 모습을 보고 또 회원들이 자꾸 놀리는지라 그럴 때 얼굴 표정을 보면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알고 보면 삶은 수학 같은 공식이다

마침 찾아온 손님이 또 있길래 김선생과 사모님, 필자의 스승…이렇게 다섯이서 한참을 재미나게 수다 떤 후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조심스럽게 첫 질문을 했다.

“선생님이 하시는 일과 기존 종교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저는 기존의 불교나 기독교의 창시자들이 그 종교를 만든 이유는, 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천년이 지난 지금…과연 그 당시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례로 배고픈 사람에게는 설교보다는 떡이 간절한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전세계에는 굶어죽는 아이들이 그득합니다. 암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게 하든지 아니면 도력 높은 큰스님이 능력만 된다면 정말 고쳐주든지…이래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가 전생에 업이 많아서 받는 것이라든가 세상은 헛된 것이니 한세상 살다가면 그만이라는 둥 종교의 본질이 호도되어버리는 현실이 안타까웠을 뿐입니다. 나는 종교도 모르고 팔만대장경에 ‘팔’자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저 그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힘을 주고자 한 것이 내가 의도한 방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 소위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와 선생님이 얻으신 깨달음의 요체와 어떻게 다른지요”

“똑같습니다. 내 말은 기존 종교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종교가 석가나 예수가 의도했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인간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가느냐. 이것이 우리의 과정이요 최종 도달점입니다. 육체적인 한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이것이 바로 깨달음의 화두죠. ”

“너무 어려운 말씀같은데…예를 들어 두려움이나 고통이 현실적으로 엄습하는데 그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두려움과 고통을 누가 느낍니까? 내가 ‘나’라는 그 생각이 느끼는 것입니다. 나를 인식하는 생각 자체가 사라지면 죽는다는 것도 가난이라는 것도 느끼질 못합니다. 역으로 얘기하자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생각이 두려움과 공포를 창조해낸다는 것이죠. 실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세상은 수학 공식과 같습니다. 내가 어떤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데,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반드시 그 생각이 그 두려워하는 대상을 창조하여 나에게로 가지고 옵니다. 안좋은 상황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두려움 기타 살면서 부딪치는 여러가지 두려움은 그 두려운 상황을 똑같이 만들어서 나에게로 그대로 가지고 온다는 것이죠.”

“왜 그런 메커니즘이 일어납니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닐까요?”

“영혼의 진화를 위해서입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학교 다닐 때 틀린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 문제를 마스터하지 못하면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 우주적 지성은 나에게 그런 문제를 계속 안겨서 그 두려움을 건너뛰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렵습니다. 독자분들을 위해 더 쉽게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기자분이라 끝장을 볼려고 하시는군요.(웃음) 좋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우리가 느끼는 이 세상은 컴퓨터 게임 시뮬레이션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오직 지금 느끼는 이 순간…바로 현재만 존재할 뿐입니다. 게임하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세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고통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걱정으로 인해 생깁니다. 그런 생각 자체를 없애 버리고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옆에서 벼락이 쳐도 현재에만 신경쓰세요. 그러다 벼락에 맞아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죽는 것 또한 시뮬레이션입니다. 게임을 꼭 끝판까지 깨야 합니까? 중간에 죽을 수도 있는 것이 게임입니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그 사람이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본질적인 주체가 죽은 것이 아니라 게임속에 감정 이입을 했던 내 자아가 죽은 것입니다. 테트리스 게임이 끝났으면 백원짜리 동전을 쥐고 옆에 있는 갤러그를 하시면 되는겁니다. 이게 우리가 그토록 무서워하는 죽음의 실체이며 윤회의 과정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손에 이끌려 엄마가 하라는 게임만 하게 되지만 더 자라게 되면 내가 게임을 고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성이 개발되지 않았을 때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의 상황이 나를 엄습하지만, 영성이 개발되어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현재에만 충실하면서 그 현재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이라 생각하면 모든 일에 평상심을 유지하게 되고 우리는 그 어떤 고통이나 업보 없이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여 이 세상을 여유롭게 즐기며 살 수 있습니다.”




(김상욱 선생이 운영하는 명상원 자성의 집 전경)

“최근 각광받고 있는 위빠싸나 명상과 좀 비슷한 것 같은데요. 그 명상법의 요체는 두려움을 제3자적인 입장에서 계속 지켜보라는 것인데…그것과 일맥상통하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비슷한 면도 있지만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 제3자적인 입장에서 지켜본 후 그 문제가 풀렸으면, 삶의 방정식은 지켜봐도 풀리지 않는 문제를 다시 그 사람에게 줘 버립니다. 고통스러운 마음을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고통이 밀려드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얘기합니다. 지금 현재의 그 순간을 그냥 즐기라고… 마음의 시뮬레이션 놀이라 생각하고 순간 순간을 즐기게 되면 더 이상 삶의 방정식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주더라도 그 사람이 그냥 즐겨버리니 더 이상 줄 문제가 없게 되는 이치죠. 

■지금 이 순간...현재에 집중하라

“마음의 시뮬레이션이라고 자꾸 강조를 하시는데…대체 그 마음이 뭡니까?”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녀석은 자꾸 자신을 느끼려고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과거와 미래를 일깨워서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그렇게 고통을 느껴야 내가 존재한다는 것에 흡족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내가 현재에 집중해보세요. 과거나 미래가 생각납니까? 도시를 벗어나 산이나 바다에 가서 밤하늘을 바라본적이 있으실겁니다. 그 수많은 별들의 향연! 그것을 보고 감동이 쏟아지는 경험을 해보셨죠? 실연이나 카드빚으로 인해 죽으려고 왔던 사람들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왜 그곳에 왔는지 잊어버립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현재에 집중하게 되어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죠. 그 느낌을 잘 살려 보세요. 그것이 계속 이어진다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예수나 부처는 바로 그런 것을 깨달아 영원한 평화에 들어간 양반들입니다. 왜 마약을 하고 도박을 하는 줄 아십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임시방편적으로 현재에 집중하여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더 많은 아편과 더 지독한 중독증에 빠져들게 되는 결과만 초래할 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라는 것은 본질이 자신을 느끼기 위한 수단이요 정신작용입니다. 자신의 참 자아를 회복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의식이 펼치는 창조 놀이임을 분명히 자각하게 되고 매 순간을 밤하늘의 별을 보며 감동을 받듯이 본래의 자신으로 있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삶에서의 문제 자체가 없어져버리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문제는 ‘나’라는 생각이 만들어 내는 경험에 저항하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감히 여쭙겠습니다. 아주 극한 상황에서도 그런 말씀을 전하시겠는지요? 예를 들어 갑자기 납치가 되어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끌려가서 칼에 찔릴 수도 있고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순간을 즐기면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 되지 않습니다. <야~내가 납치가 됐구나. 다음 상황이 어떻게 이어질까? 흥미진진하군. 마스크 쓴 놈은 인정머리 없게 생겼어. 오히려 칼을 든 놈에게 얘기를 하면 통할 것 같애. 내 선택이 맞을까? 재미있어지는데 이거> 내가 이렇게 죽음의 순간을 즐기라고 한다면 미친 소리한다고 얘기할겁니다. 하지만 영성 개발을 하면 실제로 이렇게 됩니다. 납치당했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미래의 생각과 그렇게 죽음으로 해서 내가 미련을 가지게 되는 과거의 유산들 때문입니다. 납치됐다는 그 상황 자체가 나를 고통에 떨게 하는 것이 아니란 얘기죠. 그렇게 현재에 집중하여 상황을 즐긴다면 내가 그 상황을 내 뜻대로 만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설령 죽으면 또 어떻습니까? 그것 조차도 눈만 떴다 깨어나면 시뮬레이션 게임인 것을. 임진왜란 때 일본적장이 서산대사를 죽이려고 절방에 가둬놓고 뜨겁게 불을 달궜던 애기를 아실겁니다. 그때 서산대사가 공포에 떨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랬으면 그 순간에 돌아 가셨을 겁니다. 그분은 그 현재를 즐기셨기 때문에 방안에 고드름을 얼게 하고 적장을 놀려 먹었던 것이죠.”

알쏭달쏭… 김선생의 이야기는 바위에 부딪치는 시냇물처럼 막힐 듯 막힐 듯 계속 흘러 나왔다.

“죽는다는 생각을 누가 하는 것입니까? 바로 내 생각이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걷어내면 진정한 내가 있습니다. 마치 구름에 가려진 태양과 같습니다. 납치된 상황 역시 구름이 태양을 가린 것과 똑같습니다.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본질이 죽는게 아닙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가난도 실연도 심지어는 죽음 자체도 내 생각이 만들어내는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죽는 그 상황마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나는 대중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기자님도 언제 한번 몇일 시간을 내서 오세요. 내가 그 방법을 알려 드리리다. 삶의 공식을 푸는 방법…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믿지 않는 분들이 있겠지만…그 상황을 즐길 수 있다면…반대로 내가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도사가 아닌 인간 김상욱의 고난과 깨달음

심각한 얘기가 얼마나 오갔을까? 중천에 걸렸던 태양이 이미 뉘엿뉘엿 산 뒷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먼저 오셨던 손님은 가시고 안산에서 치과의사를 하시는 장성종 선생이 당도하여 같이들 저녁을 먹으면서 다시 한번 얘기가 이어졌는데, 슬슬 김상욱 선생의 개인사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그동안 살아오셨던 역정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범상치 않으셨으리난 추측이 들어서 쉽게 말문을 여시기가 힘드실 거라는 생각이 들긴합니다만…그래도 독자분들 중에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기에….”

김상욱 선생은 필자의 이런 당돌한 질문에 언짢아 하는 기색 없이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이시더니 말문을 열었다.

“허허…어려울게 뭐 있나요? 얘기 해 봅시다. 나는…지극히 평범하게 살았어요. 학교도 다니고 남들 다니는 직장도 갖고…이렇게 집사람도 얻고…보통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물론 다른건 있었죠. 보시다시피 내가 이렇게 몸이 불편하다보니 거기에 대한 상념이 나를 계속 괴롭히는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삶에 대한 회의가 들더군요. 몸도 성치 않은데 병치레도 자주하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렇지만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있을 것 같다…뭐 이런 생각이 시계추 오가듯이 왔다갔다 했죠.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주어졌어요. 95년인가…내가 출장 중에 운전을 하고 가다가 고속도로에서 심장발작을 일으켰어요. 그래서 응급실에 실려갔는데…더 문제인 것은 그 뒤로도 그런 상황이 불쑥 불쑥 찾아왔다는 것이죠. 그러니 정상적인 생활과는 멀어지게 되고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삶을 영위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야말로 절벽의 벼랑끝에까지 서게 된것이죠.”

김선생의 회고를 듣는 것 조차 이렇게 괴로운데 그 당시 본인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을 하니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필자는 얘기를 끝까지 들어야만 했다. 김선생의 그 신산스러운 삶의 역정이 곧 나의 역정이기도 하거니와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의 역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가지였어요. 죽던지 그 상태를 벗어나던지. 그때부터 나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데는 어떤 이유가 있다. 분명히 이 고통속에서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 자신의 고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걸 다 얘기할려면 밤을 새워도 다 못할 것 같고…압축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소위 영적인 세계에 있는 분들이죠. 근데 아무리 사람들을 만나도 내 가슴에 와닿지가 않았어요. 다 남의 얘기같았죠. 그런 와중에도 나의 하반신 뼈가 녹아 내리는 증상을 겪어야 했고 수시로 심장발작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이렇게 뼈가 녹아 내리는 것도 나에게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이다. 그냥 그런 현상이 나에게 벌어지고 있을뿐이다. 그 순간… 두려움을 극복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런 마음을 먹자 뼈가 녹는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파고들면 뭐가 나오겠구나.”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음을…

김선생은 이때부터 싯다르타나 예수처럼 명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사흘동안 자신을 죽인다는 일념으로 정진을 한 후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기존의 어떤 수행 방법 없이 너무나도 외롭게 득도를 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김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삶이 고통스러운 사람은 누군가에게 기대를 하고 다가가지만 그 기대가 깨어질 때가 많습니다. 나도 숱하게 겪었습니다. 잘 알려진 영능력자는 물론이요 부처나 예수에게서도 그 기대는 깨어졌습니다. 나는 기대가 깨져버린 사람들의 심정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잘 압니다. 그래서 나를 찾아오는 분들에게는 그 기대를 깨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스스로 가야 하는 길입니다. 나는 길을 제시해줄 뿐입니다. 대신 해주겠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는 아예 가지를 마세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설탕을 안 먹어본 사람에게 아무리 설탕이 달다고 해봐야 직접 먹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나는 설탕 있는 곳으로 안내할 뿐이지 결국 맛을 보아야 하는것은 <자기자신> 입니다”

“그럼 누구나 다 겪어야 하는 과정을 우리가 지금 걷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예외는 없습니까?”

“결국 사람은 가리워진 구름을 뚫고 태양과 같은 본질인 자신을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윤회요 영혼의 여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정진한다면 예수나 석가가 외치셨던 에덴동산이나 극락정토가 바로 구현될 것입니다. 나는 그런 세상이 빨리올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받쳐서라도 헌신할 생각이며 그것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의 내가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 나의 가족들과 특별히 그동안 나를 위해 애쓰며 긴 시간 동안 고통과 시련을 감수하며 나의 손발이 되고 의지처가 되어준, 지금은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자 벗이된 나의 아내 혜명님께는 이 자리를 빌어 미안함과 감사를 드립니다. 허허허”

자신의 인생 역정을 얘기한 뒤 들려오는 마지막 웃음 소리가 장내를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다. 잠시 동안의 침묵…프랑스에서는 이럴 때 “천사가 지나가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그 순간에 정말 천사나 신장(神將)이라도 지나간 것이 아니었을까?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다른 질문 하나를 던졌다. 예전부터 필자는 기독교나 불교보다는 신선 사상에 심취해 있었는데, 얘기 나온김에 노장사상에 등장하는 무위(無爲)라는 개념에 대해 한 말씀 청했다.

“무위라고 하면 <하지 않음> 또는 <하지 않음을 한다> 등등 추상적인 얘기를 하는데, 무위란 간단합니다. 결과에 자유롭다 생각하고 선택하면 거릴낄 것이 없는데 그것이 바로 선택하지 않은 선택…바로 무위인 것입니다. 내가 결정한 일로 인해 내가 죽는다는 결과가 나와도 그것을 내 마음이 만들어낸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생각하세요. 단지 게임에서 죽는 결과가 나왔을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선택하면 이 세상에 아무것도 거리낄게 없습니다. 노자가 말하려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미래를 결정짓지 못하는 현재의 내 머뭇거림이 바로 두려움이요 공포입니다. 어떤일이 닥치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을 주목하고 집중하세요. 지금 이 순간은 이 우주가 그래야 할 순간입니다. 반대로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함은 내가 이 우주전체를 상대로 싸움을 하고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취하지 않는 밤- 취재 후일담

밤도 깊었고 얘기는 더더욱 깊어져 갔다. 도란 거리는 얘기에 취해서인지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데, 벌써 술주전자는 바닥을 긁고 있는지라 필자는 술을 사러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명상원 근처에 주막이 하나 있는데, 그 집에서 기가 막히게 맛있는 막걸리를 팔았다. 그곳에 가려면 산자락 도로를 지나야 한다. 그곳에 모인 분들 중 필자의 나이가 제일 어린지라 문을 나섰는데 나서자마자 후회가 밀려 들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 국도에 검은 괴물마냥 이글거리는 전조등의 눈깔을 치켜들고 나에게로 돌진하는 자동차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아차 하면 차에 치여서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읖는다고 하루종일 얻어 들은 얘기가 있어서리 곧 바로 그 상황을 적용시켜봤다. 

“이 순간은 시뮬레이션이다.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한 현상일뿐이다. “

나의 착각일런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한 직후부터, 달려드는 자동차에 대한 공포가 말끔히 가시게 되는 체험을 했다. 술을 사들고 돌아와서 이 얘기를 하니 장성종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기자님이 체험한게 맞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의식 수준이 있는데 그게 제각각 틀립니다. 데이비드 홉킨스 박사가 쓰신 <의식혁명>이라는 책을 보면 인류의 평균 의식 수준을 숫자로 207정도라고 하더군요. 200이 원초적인 두려움을 뜻하는 지수입니다. 거기서 7정도 올라간 수준이죠. 아인쉬타인 박사는 400정도 였다고 하고 소위 깨달았다는 분들은 700정도 합니다. 예수나 석가를 1000으로 보죠. 그런데 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순간적이긴 하지만 의식수준이 낮은 사람의 지수가 올라가게 됩니다. 아마도 여기 김선생님하고 같이 있다보니 높아지신 것 같네요.”

일반 사람보다 몇배나 내공이 높은 장선생의 말씀인지라 경청하고 있었는데, 그것 역시 이상할게 하나 없는 현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곳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던가? 

어느새 밤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고, 얘기는 그칠줄을 몰랐다. 이날 나온 얘기를 모두 적는다면 중편 소설 한권 분량이 되는지라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하겠거니와 귀신에 의한 빙의현상이라든지 전생과 윤회의 메커니즘, 외계인과 우리의 관계, 또 다른 차원의 세상 등에 대해서는 후에 따로 시간을 내어 여러분들께 전하기로 하겠다. 

두려움의 근원이라든가 현실의 고통, 인생의 방정식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http://www.aossarea.com에 들어가셔서 김상욱 선생에게 메일이나 글을 남기시면 된다. 


오컬트 칼럼니스트 이한우 (www.occult.co.tv)

*기이한 일이나 소개하고 싶은 초인이 있으면 i33man@naver.com으로 제보해 주십시오.

"스포츠 한국에 실린 기사 원본을 보실분은 상단의 홈페이지를 클릭해
들어가셔서 화면우측의 디지털특파원을 클릭하신후 문화면에 들어가시거나 
검색창에서 김상욱 혹은 이한우 기자를 검색하시면 됩니다."



꼬리글을 작성하시려면 로그인해주세요.

TOTAL: 1281   PAGE: 1/92  
공지 심리상담 안내입니다 자성의집 43 2020-02-24
공지 마법사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자성의집 481 2018-05-29
공지 본성에 대한 기도문 김상욱 2069 2011-12-16
공지 스포츠한국에 실린 원장님 기사 자성의 집 2803 2009-10-27
공지 지구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기도 자성의 집 2698 2007-05-26
1070 코로나 19에 대하여 김상욱 12 2020-03-30
1069 유튜브 에너지치유실 안내 [1] 자성의집 80 2020-03-02
1068 기도합니다... 김상욱 64 2020-02-24
1067 코로나 19와 천부경 [2] 김상욱 125 2020-02-19
1066 코로나 바이러스^^ [3] 김상욱 149 2020-01-31
1065 유튜브 천부경독송 안내 김상욱 147 2020-01-21
1064 SOS 괜찬아요 / 영혼의샤워 [2] 김상욱 227 2019-11-25
1063 이런경우는 어떻게해야 합니까...?? 혼란함 206 2019-09-28
      아주 단순하게 보십시오 김상욱 250 2019-09-28
1 [2][3][4][5][6][7][8][9][10]..[92] [다음]
제 목 내 용 글쓴이